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(문단 편집) == 서론 == ##영상이 여러 개가 남발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문서를 읽는 데 불편을 줄 수 있으니 영상은 하나만 넣어주세요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1CqGeAmVu1I)]}}}|| || 제2차 세계 대전의 유럽 전선 전개[* 파랑은 영국을 위시한 [[자본주의]] 연합국, 검정은 독일을 위시한 [[파시즘|파시스트]] 추축국, 빨강은 소련을 위시한 [[사회주의]], [[공산주의]] 세력권이다. 유럽 전선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사실상 메인이 된 전장으로, 거리가 가까운 북아프리카 전선과 중동 전선은 포함되었으나 유럽 전선 다음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졌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행된 [[태평양 전쟁]]과 인지도가 떨어져 유명하지 않은 기타 전선들은 생략되었다. 다만 전쟁 말기까지 [[코르시카]]를 계속 추축국이 차지한 것으로 되어 있고, [[계속전쟁]]에서 핀란드와 소련이 평화를 맺기 직전까지도 핀란드 전선이 변하지 않는 등 약간의 오류가 있다.] || >This morning the British Ambassador in Berlin handed the German Government a final Note stating that unless we heard from them by 11 0'clock that they were prepared at once to withdraw their troops from Poland a state of war would exist between us. I have to tell you now that no such undertaking has been received, and that consequently this country is at war with Germany. > >오늘 아침 [[베를린]] 주재 [[영국]] [[특명전권대사|대사]]는 독일 정부에 11시까지 [[독일 국방군|그들의 군대]]가 [[폴란드 제2공화국|폴란드]]에서 후퇴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소식이 없을 시, 양국 간의 전시 상태가 있을 것임을 알리는 최후 통첩을 전달하였습니다. 저는 지금 이 통첩에 대한 아무런 답신이 없었으며, 그 결과 [[대영제국|우리나라]]가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했음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. >---- >[[네빌 체임벌린]] [[영국 총리]]의 대독일 선전포고.[* [[폴란드 침공]] 이틀 뒤인 1939년 9월 3일 일요일 오전 11시 15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BBC_Home_Service|BBC 홈 서비스]]를 통해 방송됨.] 제2차 세계 대전은 대체로 [[1939년]] [[9월 1일]] [[나치 독일]]의 [[폴란드 침공]]을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.[* [[중일전쟁]] 시작설과 같이 여러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중일전쟁은 근본적으로 [[일본 제국]]의 독단적인 중국 침공에 가까운 반면, 폴란드 침공은 [[영국]]과 [[프랑스]]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열강 간의 군사적 충돌을 야기했기 때문에 폴란드 침공을 보통 시작점으로 일컫는다.] [[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]](나치당)의 집권 이후 [[베르사유 조약]]의 준수를 거부하고[* 대표적으로 비무장지대로 선포되어 군대가 진입할 수 없었던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진군시키고([[라인란트 재무장]]), 전쟁 배상금도 지불할 생각 없으니 배째라는 식이었다. 애시당초 나치 정권 차원에서 베르사유 조약의 파기는 대대적인 공약으로 선전되었으며, 이는 베르사유 조약을 혐오하던 독일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아 나치당의 지지 기반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.] [[범게르만주의]] 이념에 기반한 팽창주의적 행보를 보이던 독일은 급격한 군 재무장을 시행하고 폴란드 침공 이전부터 [[오스트리아 병합|안슐루스]]와 [[뮌헨 협정]] 등으로 주변국들을 흡수하는 등[* 물론 당시 나치 독일은 이를 [[범게르만주의]]와 [[민족자결주의]]에 따른 독일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주권 행사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. 실제로 안슐루스, 뮌헨 협정 당시 독일인들은 당장은 대체적으로 나치 독일로의 합병을 '''환영'''했다. 문제는 독일인이 아닌 [[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|체코]]과 [[폴란드 제2공화국|폴란드]]와 같은 다른 민족들 입장에서 이는 졸지에 조국이 독일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멸망 당하는 치가 떨리는 상황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.] 그 세를 불리며 영국, 프랑스와 지속적인 마찰을 빚고 있었다.[* 흔히 영국과 프랑스가 또 다시 독일과의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두려워 전쟁 이전 나치 독일에게 상당한 양보를 했다는 인식이 퍼져있고 [[네빌 체임벌린|실제로 어느 정도 맞으나]], 사실 폴란드 침공이 게시된 1939년까지도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적으로 준비가 부족해 [[가짜 전쟁]]이 일어난 상황이었다. 이런 상황에서 독일에 대한 강경책은 군사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고 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실리적인 목적과 [[제1차 세계 대전]] 이후로 전쟁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던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서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어느 정도 유화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는 시각이 최근에 들어 조명되고 있다.] 이 전쟁에서 공격 측이었던 [[추축국]] 진영은 [[나치 독일]], [[이탈리아 왕국]], [[일본 제국]] 3국이 이끌었으며, 방어와 반격 측이었던 [[연합국]] 진영은 [[미국]], [[영국]], [[소련]], [[중화민국]], [[프랑스]] 5국이 이끌었다.[* 그러나 프랑스는 [[프랑스 침공]]에서 독일에게 6주 만에 패배한 관계로 전쟁에서 일찍 이탈해버려 대개 전쟁을 오랫동안 이끈 국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. 이후로도 [[자유 프랑스]]가 승계해 계속 활동하기는 했으나 전황에 미친 영항은 무척 미미했다.] 애초부터 사실상 연합국에 비해 추축국은 상대적으로 국력이 부족했고[* [[나치 독일]]은 열강 중에서도 상당한 강대국이었지만, 일본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은 열강 말석 수준의 국가였다. 반면 연합국은 [[미국]], [[소련]], [[대영제국]]이라는 당대 세계 최고의 강대국들이 전부 뭉친 상태였으며, 특히 일본 제국은 연합국에서 가장 강대한 국력을 지닌 미국과 전면으로 맞붙어야 했다.] 제국주의 열강인 [[이탈리아 왕국]]이 [[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|생각보다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하면서]] 추축국은 전쟁 초반부[* 1939년 ~ 1942년 초]의 빠른 승세 이후 정체되었으며, 특히 [[독소전쟁|나치 독일의 성공적이지 못한 소련 침공]]과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개입이 결정타가 되면서 빠르게 몰락했다. 이탈리아 왕국은 종전보다 2년 앞서 [[베니토 무솔리니]]를 축출하고 연합국에 항복해 진영을 바꾸었으며[*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쫒겨난 무솔리니가 이끄는 독일의 괴뢰국인 [[이탈리아 사회 공화국]]이 여전히 연합국에게 저항하고 있었다.] 나치 독일은 [[베를린 공방전]] 이후 [[아돌프 히틀러]]가 [[퓌러붕커]]에서 권총 자살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하였고, 일본 제국은 미국의 [[히로시마·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]]에 [[소련-일본 전쟁|소련의 침공]]까지 겹치자 [[쇼와 덴노]]가 [[옥음방송]]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. 전쟁 이후 추축국의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각각 [[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]]과 [[극동국제군사재판]]이 실시되어 독일과 일본의 전범들을 재판했고 이들 중 핵심적인 범죄자들은 [[사형]] 선고를 받고 [[교수형]]을 당하였다. 약 7,300만여 명[* 가장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통계이다.]의 인명이 희생되고 가공할 재산 피해를 발생시킨 이 전쟁으로 인해 오랜 시간 세계를 지배한 [[제국주의]]와 유럽의 식민 제국들은 완전히 몰락했다.[* 기존의 식민 제국들인 [[프랑스]], [[네덜란드]], [[벨기에]] 등이 나치 독일에게 완전히 박살나버렸고 승전한 최후의 대형 식민제국인 [[대영제국]] 또한 대전에서 막대하게 소모된 국력으로 인해 세계 무대에서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.] 그 대신 [[미국]]과 [[소련]]이라는 새로운 초강대국들이 등장해 [[냉전]]과 현대 국제 정세의 발판을 마련하였으며, 역사상 최초로 사용된 [[핵무기]]는 전쟁사, 나아가 인류에게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가져다주었다.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확립된 질서를 배경으로 움직이고 있으며, 구 유럽식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적 파시즘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국제사회에서 대부분의 세를 잃어버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